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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검색창에 ‘테드 창’을 검색하면 배우 오정세에 대한 검색 결과가
                                                                                                                        화면을 메운다. 그가 영화 <극한직업>에서 맡은 배역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의 작가 테드 창은 배우 오정세가 아니라 지구 건너
                                                                                                                        편 미국에 사는 SF소설 작가다. SF에 진심인 사람이라면 그를 먼                                숨
                                                                                                                        저 떠올렸을 거다.                                                     테드 창   |  엘리
                                                                                                                        이 책을 보게 된 계기는 영화 <컨택트>를 재밌게 보면서 부터인
                                                                                                                        데 그 영화의 원작자가 테드 창이라는 것 때문이었다. SF 문외한
                                                                                                                        인 나에게 소설 <숨>은 완전히 새로운 세계를 열어주었다. 그동
                                                                                                                        안 SF라고 하면 영화 <스타워즈>, <스타트렉> 같은 것만 생각해
                                                           관                                                            왔다. 지금의 삶과는 다르게 너무나 이질적이고, 나의 다음, 다음           완동물 이상의 우정을 쌓게 된다. 그러다 디지언트를 만든 회사의
                                                    테 드          질 버 려
                                                           계                                                            세대쯤 볼 법한 휘황찬란한 유토피아 혹은 적적한 디스토피아의              경영이 위태로워지면서 디지언트들이 살고 있는 세계 역시 폐쇄
                                                     창
                                                    < 숨                                                                 세계들이 표현돼 있다고 여겼다. 그러나 테드 창의 작품 세계에서            되는 상황에 부닥친다. 디지언트와 강한 유대감을 가지고 있던 주
                                                           사                                                            는 전혀 달랐다. 이미 우리 앞에 도달해 있거나 숨어있는 세계, 너          인들은 본인의 의지와 무관하게 디지언트의 작동을 중지시켜야
                                                                                                                        무 정합적이라 소름이 끼치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슬픈 세계라고              하는 상황에 이른다. 이 장면이 굉장히 슬펐다. 버려질 디지언트의
                                                   >
                                                           이      세                                                     표현하면 될는지.                                      이야기가 마치 지금의 유기동물들을 떠올리게 했기 때문이다.
                                                                 계                                                      나는 테드 창의 소설을 읽노라면 정확하게 표현하기 어려운 약간             이들은 온라인 게임에서 키우는 아바타와 게이머의 관계가 아니
                                                                                                                                                                       다. 디지언트가 하는 말 한마디 한마디를 읽으면 그들을 사랑하지
                                                                                                                        외롭고 슬픈 감정이 든다. 테드 창이 묘사하고 있는 세계는 과학
                                                                 와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우리의 삶은 달라졌지만 느끼는 감정은 크             않을 수가 없다. 책에서 디지언트인 잭스는 주인인 애나에게 이렇
                                                                                                                        게 다르지 않다. 다만 그 감정을 조금 더 극단적으로 느끼게 된다.          게 말한다. “놀이 싫어.” 그 말을 들은 애나는 이렇게 말한다. “뭐?
                                                                                                                        편의가 클수록 드리우는 소외의 그림자도 크다. 소중함이 클수록             놀이가 싫을 리가 없잖아.” “놀이 싫어. 일자리 줘.” “뭐? 왜 일자
                                                                                                                        이별의 상실감도 크다는 것에서 인류 자신이 선택한 기술로 인해             리를 달라는 거야?” “돈 벌려고.” 애나는 좀 더 진지한 어조로 묻
                                                                                                                        딜레마를 겪는 소설 속 등장인물들의 모습이 애잔하기 그지없다.             는다. “돈이 왜 필요한데?” 잭스는 대답한다. “나 아냐. 애나 주려
                                                                                                                        <숨>은 여러 개의 단편으로 구성돼 있으며, 그중 내가 가장 애잔           고. 애나가 돈 필요하니까.” 반드시 만나고 만질 수 있어야만 무언
                                                                                                                        함을 느낀 것은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다. 소프트웨어 객           가를 사랑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체의 생애 주기는 가상 세계에서 키우는 디지털 애완동물 ‘디지언            인간과 디지언트가 쌓아온 유대감도 인간적이지만 디지언트를 작
                                                                                                                        트’와 그 주인들에 대한 이야기다. 디지언트는 개와 인간 사이 중           동 중지시킨 자본주의도 인간적이다. 굳이 따지자면 소설에서 비
                                                                                                                        간 정도의 지능을 가지고 인간들과 수십 년간 교감하며 주인과 애            인간적인 것은 디지언트의 존재이다. 언젠가 수익이 나지 않으면
                                                                                                                                                                       사라져야 하는 디지언트들이 애초에 없는 게 마음이 덜 아팠을지.
                                                                                                                                                                       수많은 생각을 하면서 <숨>을 읽게 된다. <숨>에 실린 단편들에
                                                                                                                                                                       대한 단상을 나름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인류는 자신이 판 함정
                                                                                                                                                                       에 제 발로 빠질 수밖에 없는 처지라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write. 이해나 기자 특종보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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