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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 프라모델 제작은 그의 삶에 활력소가 되었다. 인터넷을 2018년 만화 특화 거리인 서울 명동 ‘재미로’에 김청기 감독
찾아보니 자신과 비슷한 다른 이들도 있었다. 누구보다 더 기념관을 개관했다. 이곳엔 그의 회사에서 제작한 특색 있는
잘 만들고 싶은 욕심이 났다. 동호회에 가입해 자신이 만든 피규어와 함께 이동한 대표가 수년간 모은 다양한 프라모델
작품들을 동호회 사이트에 올리기 시작하자 자연스레 사 까지 촘촘히 마련돼 있다.
람들의 인정도 따라왔다. 시작코퍼레이션의 ‘시작’은 ‘시간의 작품’이라는 뜻을 담고
있지만, 아쉽게도 오랜 시간을 들여 만드는 커스텀 피규어
덕이 업으로, 업이 삶으로 는 만날 수가 없다. 완판의 저력을 지닌 그이지만 이제 소량
“내 것도 만들어주라.” 이동한 대표의 작품이 맘에 들어 자 의 커스텀 피규어를 제작하는 데 드는 품을 줄여 더 많은 이
기 것도 만들어달라는 성화에 술 한잔 얻어먹으며 만들어 들이 어린 시절의 추억을 새롭게 간직할 수 있도록 하는 것
주던 것이 입소문을 탔다. 심지어 만들면 바로 연락하라고, 이 그의 바람이다. 김청기 감독 기념관도 이 연장선에 있다.
자신이 사겠다는 마니아 형들도 생겼다. 만들면 바로 팔리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삼은 만큼, 지속가능한 피규어 산업의
는 통에, “조나단(이동한 대표의 활동명) 작가 작품은 전시 대중화를 이끌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 어느새 덕질은 그의
회에 가도 볼 수 없다. 다 팔려서!”라는 말이 돌 정도였다. 삶에 나침반이 됐다.
소위 ‘완판남’이 될 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이냐고 묻자 이동
한 대표는 “내가 갖고 싶은 작품을 만들었을 뿐”이라고 말 덕질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
했다. 가지고 싶은 것을 만들었더니 역설적으로 자신에게는 인터뷰를 하면서 회사 이름이 ‘시작이 반이다’에서의 ‘시작’
남은 작품은 없게 된 셈이다. 통장에 쌓이는 월급보다 프라 으로도 읽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이 대표의 덕질과 새로운
모델 제작으로 얻는 부수입이 더 커질 무렵, 그는 결국 다니 도전은 아직도 진행 중이니까. 예를 들면 이런 거다. 그는
던 회사에 사표를 냈다. 그렇게 혼자서 피규어를 제작하는 얼마 전 집 근처에 새로 오픈한 클라이밍 학원에 등록했고,
시작코퍼레이션을 설립했다. 우리 전통주에 가장 잘 어울리는 음식이 베트남 요리라는
생각에 쌀국수집을 열었다. 술이 좋아 전통주를 만들어 보
삶에 나침반이 된 덕질 려고 노력 중이며, 명동 최초의 상인회를 조직해 얼마 전 골
피규어와 프라모델은 대표적인 키덜트 콘텐츠다. 키덜트란 목형 상점가 등록을 마쳤다. 그렇게 시작코퍼레이션에서 다
‘키드(Kid)’와 ‘어덜트(Adult)’의 합성어로 어린 시절 즐기 루는 분야도 점점 진화하는 중이다. 처음에는 작가주의 피규
던 장난감이나 만화 등에 그리움을 느껴 이를 다시 찾는 어 어 수제 제작에서 피규어 디자인업 그리고 최근 들어서는 AI
른들을 의미한다. 이 키덜트 문화가 하나의 트렌드로 받아들 시대를 맞아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4차 산업인 NFT 분야에
여진 것이 이 대표에게는 운으로 작용했다. 얼마 전에는 자 도 관심을 가지고 얼마 전 법인을 만들었다.
비를 동원해 국내외에 흩어져 있던 로보트 태권V 전편 필름 “메타버스 시대가 오면 그 안에서 갖고 놀고 수집할 장난감
을 모으는 험난한 여정을 거쳐 디지털 변환 작업에 나섰고, 이 필요하지 않겠어요?”라며 그는 눈을 반짝였다. 무언가를
로보트 태권V의 모든 필름을 디지털 복원판으로 완성했다. ‘좋아하는’ 사람의 눈이었다.
디지털 복원판은 펀딩 플랫폼을 통해 공개했는데 공개 직후
14,000%가 넘는 펀딩 달성률을 기록하기도 했다. “날씨 좋아지면 아이들 데리고 한번 놀러 오세요.” 사람 좋
그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한발 더 나아갔다. 국산 만화영화 게 이야기하는 이동한 대표를 뒤로한 채 인터뷰를 마치고
의 우수함을 더 알릴 방법을 고민한 것. 추억과 즐거움을 공 집으로 돌아오는 길. 기분 좋은 고양감이 느껴졌다. 명동 재
유하기 위한 작품을 발굴해 새 생명을 불어넣고 싶다는 마음 미로, 조만간 또 놀러 가야겠다.
이 들었다. 이러한 일념과 복원에 대한 고민의 결실로 지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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