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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uriosity






 S treaming                         덕후의 안목과 순수함으로 오늘도 덕질!






                          인류가 다른 동물과 다른 점이 있다면 생존과 짝짓기를 넘어서 호기심이라는 무기를
                          가졌다는 것이다. 각자의 호기심으로 시작된 놀이는 때로 과학이나 철학, 예술이 되어
                          인류를 새로운 문명사회로 이끌기도 한다. 하지만 많은 경우 놀이는 다만 자기애를 충
                          족시키는 것으로 그 효용성을 다하는데, 거기서 우리는 더없는 안식을 얻는다. 당최 쓸
 팬덤, 스밍…역사 속에 있었나니
                          모없어 보이는 무언가에 집착하고 천착하며 요리조리 뜯어보고 쓰다듬고 어루만지는
                          행위를 반복하는 일. 이것이 바로 덕질을 정의하는 말일 것이다. 또한 그 반복은 제자
                          리를 맴도는 듯하나 결국 자신을 선명하게 만들고 세계와 전면적으로 만나게 한다. 이
 김정희가 개인적으로 성공한 덕후라면, 팬덤을 이뤄 성공한 덕후들도 있다. 고주몽이  것이 특정한 방식으로 존재하고자 하는 의식을 가진 교양인으로서의 태도가 아니고
 나 왕건을 따르던 덕후들 말이다. 혼란의 시기에 누가 이 지옥 같은 삶에서 구제해줄   무엇이겠는가.
 것인지 그들은 대번에 알아보았다. 물론 고주몽과 왕건이 활을 잘 쏘고 전쟁터에서 수  천문학자 마리아 미첼은 “삶에 별빛을 섞으라”고 했다. 덕질은 건조한 삶에 별빛을
 많은 공을 세우기도 했지만 그들을 따르는 무리의 한결같은 추앙이 없었다면 과연 나  섞는 행위이다. 손에 닿지 않는 별빛을 향해 깡총거리고 흩어진 별가루를 찾아 모래
 라를 세우는 데까지 이를 수 있었을까. 팬덤 정치는 비단 최근의 일이 아니라 예전부터   속을 뒤지는 어린아이처럼 우리는 열망할 것을 찾아 헤맨다. 덕질은 삶의 별빛이요,
 있어온 인류의 생존 방식이 아닐 수 없다. 그러니까 우리는 정덕(정치 덕후)의 후예라  별가루다.
 는 말이다. 모르긴 몰라도 선덕여왕은 엄청난 팬덤을 가지고 있었을 거다. 당시에는 성  때로 별은 너무 멀고 희미해서 그 빛을 잃을 때도 있다. 그렇다고 별이 사라지는 것은
 차별이 없었다고 하나 처음으로 여성이 왕이 되기까지에는 선덕여왕을 따르는 팬덤이   아니다. 별은 어둠 속에 ‘있다.’ 그것을 덕질이라 이름하든, 열망이라 이름하든 우리 내
 어마어마했을 것이다.              면에는 그것이 숨어있다. 그러니 뭔가를 해야 한다고 불안해할 필요는 없다. 품고 있던
 정치뿐 아니라 문화적으로도 덕질은 고난 속에서 피어난다. 농민의 난이 우후죽순처  그것이 언젠가 빛을 낼 때 기꺼이 별빛을 쫓던 어린아이로 돌아가면 된다. 순식간에 별
 럼 일어날 무렵 <홍길동전>이 탄생하지 않았는가. 당시 <홍길동전>이 얼마나 큰 사  나라로 날아가서 예측하지 못한 세계를 만나고 또 다른 세상을 궁금해하고 환희를 느
 랑을 받고, 얼마나 많은 이들이 다음 작품을 기다렸을지 가히 짐작도 가지 않는다. 작  끼는 거다. 덕질의 참 매력은 바로 이것이다. 환희를 느끼는 자신이 사랑스럽다는 것,
 자 미상의 <춘향전>이나 <심청전> 등도 입에서 입으로 지금까지 전해져 오려면 수많  덕질은 자신을 더 사랑스러운 존재가 되고 싶게 한다.
 은 덕후들이 스밍(아마도 그들은 스스로 반복해서 들려주었을 것이다)을 하였을 것이  슬프고 힘든 순간 못지않게 기쁘고 좋은 감정도 나누고 해소하는 것이 중요하다. 덕질
 다. 지역마다 조금씩 내용이 다른 것은 그 때문이 아닐까.    이야기는 감정을 안전하게 해방시키는 좋은 방법 중 하나다. 사랑스러운 자신에 대해                andom
 심지어 문화유산으로 등재되는 것조차 기록 덕후들 덕분이라고 한다. 수원화성의 경  실컷 말하고 자랑할 필요가 있다. 들어줄 누군가가 없다면 랜선에서라도 떠들면 된다.
 우, <화성성역의궤>라는 책이 아니었다면 전쟁으로 훼손된 성곽을 완벽하게 복원할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 덕질도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이 있다. 지나친 찬양은
 수 없었을 것이고 유네스코에 등재되지 못했을 것이다. 그 책에는 매일의 공사 일지와   혐오를 낳고 지나친 혐오는 돌+아이를 낳기도 한다. 수억 명이 모인 랜선이라도 다행
 자재, 공사 비용, 공사 중 오간 공문서까지 상세하게 적혀있다고 한다. 우리 선조들은   히 이상한 사람들은 이상한 사람끼리 어울리고 사랑스러운 사람들은 사랑스러운 사
 이런 일이 일어날 거라고 미리 내다봤던 걸까, 아니면 정말 기록만이 그 모진 공사의   람을 알아본다. 예쁜 것만 보고 살아도 부족한 세상, 덕후의 안목과 덕질의 순수함을
 과정을 견디는 힘이었을까. 이렇게 덕후의 눈에는 문화와 예술, 더 나아가 시대 양식  믿고 무시할 것은 ‘알아서 잘 딱 깔끔하게’ 무시해버리자. 인류는 그렇게 정반합을 딛
 조차 거대한 덕질로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고 진보를 이룰 것이다. 자, 하던 대로 각자 충실히 덕질 앞으로!                                 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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