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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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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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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지를 다졌다고 한다. 구중궁궐 온갖 제약이 심했던 조선 왕실
에서 덕질이 아니었다면 무엇으로 자신을 지키며 존재를 굳건히
할 수 있었겠는가.
write. 천둥 작가 <요즘 덕후의 덕질로 철학하기> 저자로 그는 50대 덕후 대표 주자를 자처한다.
인간은 고난에 임할 때 더욱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덕질을
독일의 저명한 철학자 페터 비에리는 저서 <페터 비에리의 교양 하게 된다. 추사 김정희는 제주도 유배 시절 혹독한 세월을 차
수업>에 이렇게 이야기했다. (茶)로 이겨냈다. 전라남도 해남의 초의스님에게 보낸 편지 기
“교양인이란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야 하고, 자신의 마음 록이 남아있는데, 현판의 글씨를 보낼 테니 서둘러 차를 보내
을 들여다보기 위해서는 매개가 필요하다며, 교양인은 자기 자신 달라고 재촉하는 내용이 담겨있다. 자신의 명품 글씨를 앞세워
과 세계를 대면하는 각자의 방식이 있다”고. 그런 면에서 본다면 차를 달라니, 주변에도 얼마나 적극적으로 영업(!)을 했는지 추
덕질은 교양인의 특성에 의한 것이며, 덕후란 놀이 문화를 가진 사 덕분에 ‘초의차’가 전국적으로 유명해졌다.
‘호모루덴스(놀이하는 인간)’가 아닐까. 김정희의 덕질은 차 이전에 금석(금속과 석재에 새겨진 글)이
있었다. 우리는 그를 추사체로만 기억하지만, 김정희 스스로
역사에도 고증된 덕질의 이로움 금석벽이 있다고 자랑스러워할 정도였다고 한다. 예전에는 무
덕질의 이로움은 역사적으로도 고증된 사실이다. 태종은 사냥 언가를 지나치게 좋아하는 이에게 ‘벽(癖)’, ‘광(狂)’, ‘치(痴)’
우리 모두 덕질 앞으로! 마니아였고 숙종은 그림 수집가, 헌종은 인장을 수집하고 직접 등을 붙여 ‘병든’, ‘미친’, ‘어리석은’이라는 의미를 담아 낮춰
만들었으며 고종과 순종은 당구광이었다. 특히 고종은 러시아 불렀다. 하지만 김정희의 금석벽은 무려 진흥왕 순수비를 최
더 이상 덕후는 어린 소녀 팬들을 얕잡아 부르는 ‘빠순이’를 공사관으로 피신하면서 조선인으로는 처음 커피를 맛본 뒤 커 초로 밝혀낸 수준이다. 이 정도면 덕질은 벽이니 치니 광이 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삶에 대한 열정과 무언가에 깊이 피 마니아가 됐다. 또한 이 커피를 통해 국운을 되살리고자 외국 니라, 하나의 일가를 이루기 위해서 반드시 장착해야 할 덕목
몰입할 수 있는 삶의 자세를 가진 자들을 일컫는 이름이 되었다. 의 사신들과 ‘가배(커피의 옛말)’를 마시며 근대화를 이루겠다는 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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